모지트

본문 바로가기

HOME I I

“earthly immortality”의 진정한 의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MOSIT 작성일22-09-26 12:47 조회1,294회 댓글3건

본문

 

진짜 바보. 멍청이들은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도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똑똑하고 학식이 풍부해도 우리가 우리 글로 된 모든 문장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 가령, 전문적인 의학, 경제, 물리학에 관한 글은 그 분야 사람 아니면 모른다. 그게 당연하다. 이것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Native Speaker로 문학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그 사람의 분야가 아닌 전문적인 의학, 경제, 화학, 물리학에 관한 글은 그들도 다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어로 된 모든 글을 해석하고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미쳤다.

 

그리고

 

아니, 수능영어문제 오류 지적하는데, 당신은 우리 글로 적힌 모든 글을 이해하느냐? 영어로 된 모든 글을 이해하느냐??? 이런 이야기가 왜 나오나???

 

정말 한심한 바보, 멍청이!!!

 

간혹,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한심한 바보, 멍청이라는 것을 아예 인식도 못하고 산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착각에 빠져 말과 행동을 한다.

 

우리가 왜 대입시험을 볼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한다고 서울대 법대나 의대에 들어갈 수가 없다. 따라서 서울대 법대나 의대에서 공부할 수준이 되는지 여부와 그 모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선발을 해야 한다.

 

선발에서는 그 학생/수험생의 실력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조국처럼 딸, 아들 입시에 조국과 정경심이 서류 조작하고 심지어 시험에서 조국과 정경심이 달라붙어 문제를 풀어주면..., “이해찬이라는 아주 한심하고 멍청한 녀석이 말을 하듯이 카르텔이 형성된다.

 

수능시험은 공정해야 한다. 또한 수능시험은 유능(?)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수능시험 문제가 아주 우수해서 그 어디로부터 다 인정받아야 한다.

 

수능시험은 거의 모두를 고등학교 졸업자나 동등 학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 가령 수능시험에 의학박사나 경제박사들이 보고 이해할 만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지문이 등장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난이도가 아주 어려운 문제일수록, 그 문제가 정교하고 치밀하여 입도 못 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

 

수능시험 문제에 엉터리 내용이 등장하면 안 된다. 오답 시비가 발생하면 이미 시험문제로 그 기능은 망쳐진 것이다.

 

영어나 국어로 들어가자.

 

영어나 국어는 언어이고, 언어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이런 내용은 고등학교 교육에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른다면...

 

그래서 그 누가, “짜장면짱께로 알고, 중식점에 들어가서 “‘짱께주세요!” 이러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러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못 알아듣는 사람의 잘못인가?

 

안치다라는 동사가 있다. “안치다는 밥이나 음식을 만들기 위해 그 재료를 솥 등의 용기에 넣고 불에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쌀을 안치다여기에도 조금 더 확장되어 //찌게를 안치다로 사용된다. 이게 우리 국어 어법이고 문법이다.

 

그런데, “사료를 안치다라고 사용하면??? 이게 우리 말 어법/문법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고슬고슬한 밥

 

우리말 어법/문법에 의하면 고슬고슬한 + 은 정확한 어법이다. 그러면, “고슬고슬한 빨래”, “땀에 젖어 고슬고슬한 그의 이마등은 우리말 어법/문법에 합당한가???

 

“earthly immortality”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

 

“earthly”

 

흙의

지구의

(종교와 영적인 것과 대조/비교하여) 세속적인, 육체의

 

그러면

 

“immortality”불멸을 의미하고

 

그러면

 

흙의 + 불멸

지구의 + 불멸

(종교와 영적인 것과 대조/비교하여) 세속적인, 육체의 + 불멸

들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영미에서는 “earthly immortality” 이렇게 사용한다. 이게 원칙이다.

 

“Nathaniel Hawthorne”의 유고 작품에 “Septimius Felton, or, the Elixir of Life”가 있다. 이 책 서문에 있는 내용이다.

 

The idea of treating in fiction the attempt to renew youth or to attain an earthly immortality had engaged his fancy quite early in his career, as we discover from “Doctor Heidegger’s Experiment,” in the “Twice-Told Tales.”

여기서, “earthly immortality”는 육체가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The Virtuoso’s Collection” includes some of the elixir vitae “in an antique sepulchral urn.” The narrator there represents himself as refusing to quaff it. “‘No; I desire not an earthly immortality,’ said I. ‘Were man to live longer on earth, the spiritual would die out of him....

여기서도, “earthly immortality”는 육체가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Time , Friday, June 17, 1966” 기사로 사이비 교주에 관한 것이다.

 

Riding a milk-white steed, dazzlingly attired in a white flannel suit and golden necklace with ruby pendant, bewhiskered, 240-lb. Benjamin Purnell cut a commanding figure around the Michigan fruit-marketing community of Benton Harbor. A grade-school dropout who was the master of mostly untaught arts, he was the self-proclaimed Seventh Messenger of Christ. Though one coruscant message was celibacy, Purnell was accused more than once of seducing teen-age girls in so-called purification rites. Another tablet from Purnell's private Sinai was the promise of earthly immortality, a cup that Ben himself let pass, dying in 1927 of tuberculosis, diabetes, hardening of the arteries, asthma, interstitial nephritis and a leaky heart.

 

여기서도 “earthly immortality”은 육신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수능 2016년 수능 34번 지문에서의 “earthly immortality”는 과연 무슨 의미미냐?

 

Long before Walt Whitman wrote Leaves of Grass, poets had addressed themselves to fame. Horace, Petrarch, Shakespeare, Milton, and Keats all hoped that poetic greatness would grant them a kind of earthly immortality. Whitman held a similar faith that for centuries the world would value his poems.

 

영어강사 교사가 엉터리 수능문제를 엉터리로 해설했으니 자기들(의 이익/체면)을 위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 

댓글목록

MOSIT님의 댓글

MOSIT 작성일

아니, 일제의 부당함에 맞서 싸운 것이 잘못이냐?

수눙문제 출제 개판으로 한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이 잘못이냐? 

엉터리 영어교사나 강사가 수능문제 엉터리로 해설하고 이게 답이다... 이러는 것을 보고 그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부당하냐?

우리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사기꾼이나 엉터리가 아니라 유눙하고 실력 있고, 그리고 정말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이들이 빛을 보아야 한다.

MOSIT님의 댓글

MOSIT 작성일

시(= poem, poetry)라면 최소한 2~3 가지가 있어야 한다. 음악성(= 기름, 운율...등등), 음악성이 있어야 듣기 좋다. 감성이 있어야 한다. 즉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사로잡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영시로 보면 William Wordsworth의 “Daffodils”이나 Robert Frost의 “The Road Not Taken”을 생각하면 된다. 그 다음 어휘가 정교하고 좋아야 한다. 문학의 역할 중의 하나가 언어를 보다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Walt Whitman”의 시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의 시에는 “Sex, 아주 거친 인종차별/모욕, 여성 비하... 등은 분명히 있다. 심지어 그에게, 그의 일부 시에, 새로운 것을 다룬다고 아주 호의적이었던 Henry David Thoreau도 ”Leaves of Grass“를 두고 “It is as if the beasts spoke.”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있는데, 그런데 미국이 내세울 만한 자랑스러운 역사나 문화가 없다. 그래서 작은 것도 부풀려 내세운다. 그런데 “Walt Whitman”이 영국 옆 섬나라 아일랜드 출신/사람이라면... 지금 같은 대접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아마 “He and his poems were committed to the lasting oblivion”되었을 것이다.

MOSIT님의 댓글

MOSIT 작성일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 보자. 나도 대학 때, 특히 대학원 때 정말 어쩔 수 없어, “Walt Whitman”의 시집 “Leaves of Grass”의 일부를 읽은 적이 있다. 국내 대학의 영문과에서 (영)문학 전공, 가령 19세기 미국문학이든지, 특히 “시”를 전공한 교수를 제외하고 “Walt Whitman”의 시집 “Leaves of Grass”를 다 읽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시”를 전공한 (영문과 문학) 교수를 중에서도 특별히 “Walt Whitman”을 전공했다면 모르지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왜? 너무 지겹고 따분해서..... “내”가 보기에는 영어 표현도 배울 것이 거의 없고, 시도 세련되지 않고... “Wordsworth”의 시는 공감이 가고, 저런 표현은 암기하고 싶다... 이러는데, “Walt Whitman”은 전혀 그러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수험생들이 왜?  “Walt Whitman”의 시를 알고 그의 시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Walt Whitman의 시론, 아니면 그 수능문제 지문 저자의 시론(?)을 배워야 하나?

아니 우리 시인 김소월 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영어표현 하나도 건질 것 없는... “Walt Whitman”의 시를, 왜? 

아래는, “A Historical Guide to Walt Whitman by David S. Reynolds”의 내용 일부이다.

Few books of poetry have had so controversial a history as Whitman’s brash, erotically charged Leaves of Grass. When the volume’s first edition appeared in 1855, some prudish reviewers branded it as obscene and egotistical. “A mass of stupid filth” was the verdict of the fastidious critic Rufus Griswold. The Boston Intelligencer similarly labeled it “a mass of bombast, egotism, vulgarity, and nonsense.” Even the discerning Henry David Thoreau, while generally enthusiastic about Whitman, wrote of Leaves of Grass, “It is as if the beasts spoke.”


mosit

Copyright © 2015 mosit. All rights reserved.